고려시대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의 관직에 오른 이중항(李仲降)을 비롯하여 태부(太傅)의 이인지(李仁至),
그리고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직한임원(直翰林院)을 거쳐 우정언(右正言)을 지냈으며, 그후 우승선(右承宣),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추밀원진사(樞密院秦事), 형부상서,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이부상서, 참지정사 등을 역임하고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던 이공승(李公升),
일찌기 서해도(西海道)를 안무(按撫)했고 1203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던 이춘로(李椿老)를 비롯, 문하시랑(門下侍郞)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이른 이규장(李圭長), 대장군 이백강(李伯剛),
고려 우왕초에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내고 1382년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門使)가 되었고 조선이 개국하자 삼사좌사(三司左使)로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판개성부사를 지내고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으로 청성백(淸城伯)에 봉해진 이거인(李居仁) 등의 인물이있다.
조선시대에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거쳐 평안도병마도절제사,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등을 역임, 1400년 문하좌정승(門下左正丞)에 오르고, 1402년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로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으며 뒤에 영의정(領議政)에 오른 이거이(李居易) 등을 들 수 있다.
한성부윤을 지내면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청주에서 적을 대파, 1596년에는 홍주목사 홍가신(洪可臣), 이희수(李希壽), 이효립(李孝立), 이대춘(李大春) 등과 함께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한 이거 등은 당대 높은 덕망과 충의의 정신으로 청주이씨 가문을 높인 인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