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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함평이씨(咸平李氏, 함풍)

유래

시조 : 이언(李彦)

시조 이언(李彦)은 고려 광종때에 신무위 대장군(神武衛 大將軍)으로 봉해졌고, 이어 충숙왕때 고손되는 이광봉(李光逢)이 벽상삼한삼중대의 보국숭록대부 좌명공신으로 함풍(咸豊. 함평의 옛이름) 부원군으로 봉해졌으며 여러대에 걸쳐 그곳에서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함평으로 하였다.

인물

조선초기에 무로써 가문을 일으켜 조선시대에만 70여명의 문신, 무신을 배출하였다.

중시조는 시조의 10대손인 이종생(李從生), 그는 세조때의 무장으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야인 정벌등에 용맹을 떨치고 각도의 병마절도사를 두루 역임했는데 함평이씨의 뛰어난 인물은 거의가 그의 후손이다.

그의 아들 이양(李良)장군 또한 연산군~중종 때에 전라, 충청 수군절도사, 함경도 병마절도사등을 지냈던 인물이다.

이대원(李大源)은 선조16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남해안에 출몰한 왜적을 추격하여 적장을 사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 이어 흥양지방에 왜구가 쳐들어오자 백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3일간의 혈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해 포로가 됐으나 항복을 거부하고 순국했다. 그의 충정을 기리는 뜻에서 쌍충사(雙忠祠)가 건립되었다.

선조때 이덕일(李德一)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왜적과 싸웠다. 그는 화살하나로 두명의 적을 쓰러트릴만큼 활솜씨가 뛰어나 이같은 용맹이 알려져 이순신장군의 참모로 기용되어 임진왜란을 종결시키는데 크게 공을세워 절충(折衝)장군(정3품)에 올랐다.

항렬자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

23世
유(儒)○
24世
○서(緖)
25世
민(敏)○
26世
○헌(憲)
27世
계(啓)○
28世
○범(範)
29世
재(載)○
30世
○행(行)
31世
건(建)○
32世
○성(聖)
33世
규(奎)○
34世
○선(善)
35世
원(源)○
36世
○식(植)
37世
희(熙)○
38世
○기(基)
39世
진(鎭)○
40世
○수(洙)
41世
병(秉)○
42世
○열(烈)

인구수

1985년 조사
103,697명
24,776가구
2000년 조사
125,419명
38,852가구
2015년 조사
138,55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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