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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홍주이씨(洪州李氏)

유래

시조 : 이유성(李維城)

시조 이유성(李維城)은 고려 대장군 이한(李翰)의 아들이다.

이유성(李維城)은 1202년 지합문사(知閤門事) 로 경주에서 이비(利備), 패좌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초토처치병마우도부사(招討處置兵馬右道副使)가 되어 우도사(右道使) 강순의(康純義)와 함께 출정하여 난을 평정했다. 고려 신종초에 서경부유수(西京副留守)가 되었다.

9세손인 이기종(李起宗)이 내시연경관제학(內侍延慶官提學)으로 홍양(洪陽. 홍주의 옛이름)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홍주로 하고 있다.

인물

2세손인 이청소는 고려시대에 평장사를 지냈고, 이응송(李應松)은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를 지냈으며 이연수(李延壽)는 1216년 우승선(右承宣), 1221년 판리부사(判吏部事), 이듬해 수태보주국(守太保柱國)을 거쳐 문하시중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이서(李舒)는 1357년 문과에 급제하여 1392년 조선개국공신 3등으로 안평군에 봉해지고 태종 즉위 후 우정승으로 부원군에 진봉(進封)되고 고명사(誥命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영의정에 올라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선조때의 이종장(李宗張)은 1569년 무과중시에 급제 1592년 임진왜란 때 충주목사로서 도원수 신립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참전, 순절하므로써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홍평군에 봉해졌다.

이희건(李希建)은 무과에 급제하여 1624년 용천부사로서 이괄의난을 토평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으로 홍양군에 봉해졌다. 그는 1627년 정묘호란 때 전사,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용천의 충렬사와 안주의 충민사에 제향되고 있다.

인구수

1985년 조사
11,435명
2,866가구
2000년 조사
14,897명
4,733가구
2015년 조사
15,96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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