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스캐너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고성김씨(固城金氏)

유래

시조 : 김말로왕(金末露王)

시조 김말로왕(金末露王)은 김수로왕(金首露王)과 함께 구지봉(龜旨峰)에서 탄생한 여섯 동자(童子)중 제일 막내이다.

42년 김수로왕이 가락국(금관가야)의 왕이 될 때 그는 6가야 중의 하나인 소가야(小伽倻)를 세워 왕이 되었다고 한다. 소가야의 도읍을 지금의 고성으로 정하였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고성으로 하였다.

- 묘소는 경남 고성군 회화면 금봉산에 있다.

인물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삼중대광(三重大匡), 금자광록대부(今紫光祿大夫)에 올라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로 고령백(固寧伯)에 봉해진 정렬공(貞烈公) 김윤화(金潤華)와 낙천군(洛川君) 김수(金隨)가 유명했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양평공(良平公) 김미(金彌)의 맏아들 김빈길이 뛰어났다. 그는 김말로왕의 34세손으로 1397년(태조 6년) 왜구를 격퇴하는데 공을 세워 삼도수군 도절제사(三道水 軍道節制使)가 되었으며, 이듬해 재침한 왜구를 멸악산에서 대파하여 병조판서(兵曹判書), 정헌대부(正憲大夫), 검교정승(檢校正丞)에 오르고 뒤에 우의정(右議政)에 추증되었다. 그의 아들 김원량(金原亮 : 이조정랑), 김희량(金希亮 : 수원부사 , 병조판서), 김문량(金文亮 : 호조판서) 3형제도 모두 벼슬에 등용 되어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김경현(金慶賢)은 1467년(세조 13년)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키자 좌대장 어유소(魚有沼)의 종사관(從事官)으로 공을 세워 함길도 순무중군(咸吉道巡撫中軍)을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 : 종2품 문무관의 품계)에 올랐으며, 김세응(金世應)도 이때 북청에서 공을 세워 노성 현감(魯城縣監)을 지낸 후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왜적을 대파하여 수문장(守門將)에 오른 월촌(月村) 김사홍(김仕弘)과 숙종 때 평해군수(平海郡守)를 거쳐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역임한 김우추(金遇秋)가 유명했으며, 김복광(金復光)은 효행이 뛰어나 1718년(숙종 44년) 고향에서 효행비를 세웠다.

한말에 와서는 김봉섭(金鳳燮)이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운을 한탄하며 오대산에 은둔하였고, 김중오(金重五)는 보통학교를 설립(設立)하여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다가 한일합방이 되자 격분함을 이기지 못해 애사(哀死)하여 가문을 더욱 빛냈다.

항렬자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

53世
병(炳)위치 미표기
53世
성(性)위치 미표기
54世
희(喜)위치 미표기
54世
규(奎)위치 미표기
55世
선(善)위치 미표기
55世
경(庚)위치 미표기
56世
구(求)위치 미표기
56世
수(洙)위치 미표기
57世
영(榮)위치 미표기
57世
동(東)위치 미표기
58世
찬(燦)위치 미표기
58世
환(煥)위치 미표기
59世
중(重)위치 미표기
59世
재(在)위치 미표기
60世
용(鎔)위치 미표기
60世
호(鎬)위치 미표기
61世
홍(洪)위치 미표기
61世
영(永)위치 미표기
62世
식(植)위치 미표기
62世
근(根)위치 미표기
63世
현(炫)위치 미표기
63世
경(炅)위치 미표기
64世
재(載)위치 미표기
64世
배(培)위치 미표기
65世
석(錫)위치 미표기
65世
종(鍾)위치 미표기

인구수

1985년 조사
14,881명
3,275가구
2000년 조사
11,888명
3,709가구
2015년 조사
13,73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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