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김신(金侁)
시조 김신(金侁)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손자로 우복야(右僕射) 삼중대광(三重大匡)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김정보(金正寶)의 13세손이다. 김신의 자는 윤식(倫直), 호는 낙천제(樂天齊), 시호는 충간(忠簡)으로 고려 때 요양성 참정(遼陽省參政)을 지낸 후 귀국하여 금주군(錦州君. 금산의 옛 이름)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금산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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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김신(金侁)
시조 김신(金侁)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손자로 우복야(右僕射) 삼중대광(三重大匡)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김정보(金正寶)의 13세손이다. 김신의 자는 윤식(倫直), 호는 낙천제(樂天齊), 시호는 충간(忠簡)으로 고려 때 요양성 참정(遼陽省參政)을 지낸 후 귀국하여 금주군(錦州君. 금산의 옛 이름)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금산으로 하고 있다.
시조 김신의 맏아들 김세유(金世宥)는 부원수(副元帥)를 지냈으며, 차남 김광유(金光宥)는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역임하였다.
김광유의 증손자 김지(金摯)는 1370년(공민왕 19년) 문과에 급제하고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를 거쳐 사의대부(司義大夫), 좌사간(左司諫)을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태종이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제수(除授)하여 그를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충절을 지켰다.
조선 선조 11년 문과에 급제한 김희옹(金希雍)은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과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냈고, 김감(金鑑)은 김광유의 11세손으로 광해군 때 등과하고 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한 후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곡성에서 의병장이 되어 아들 김남식(金南植), 김남억(金南億) 형제와 함께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외 인물로는 김남억의 6세손으로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낸 김언장(金彦章)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언태(金彦兌), 좌승지(左承旨) 김언익(金彦翊)이 유명했고, 김언익의 아들 김의흥(金義興)은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여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김평(金平 : 김언태의 아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대휘(金大輝), 김인해(金仁海)와 함께 가문을 빛냈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