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흥의 증손자 김중원(金重源)이 고려 시대에 안렴사(按廉使)를 거쳐 형부시랑(形部侍郞)을 지내고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증직(贈職)되었다. 특히 그는 고려가 망하자 개탄하여 단식을 하다가 순절(殉節)하였다.
공양왕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김광저(金光儲 : 김중원의 손자)는 무록산(武鹿山)에 들어가 불사이군의 충절로 절의를 지켰는데, 태종이 이조판서(吏曹判書)의 벼슬을 내려 그를 회유하려 했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한편 김광저(金光儲)의 아들 김순(金順)도 고려 때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였으나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에서 물러나 호를 퇴휴당(退休堂)이라 하고 충북 옥천의 백지리에 정자를 짓고 망국의 한을 달랬으며, 분성군(盆城君) 김정갑(金挺甲)의 아들 김질(金秩)은 태조가 등극전의 정의(情)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 하고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임명되었으나 응하지 않고 아산 도고산에 은둔 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자호(自號)를 송암(松菴)이라 하였다.
이조판서 김관(金觀)의 아들 김문기(金文起)는 1399년(정종 1년) 2월 16일 충북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서 출생하여 세종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에 임명되어 "태종실록(太宗實錄)"을 편찬했으며, 계유정난 때 이조판서로 내외종간(內外從間)인 박팽년(朴彭年) 등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다가 1456년(세조 2년) 6월 8일 사육신과 함께 순절했다.
거창과 양지현감(陽知縣監)을 거쳐 영월군수(寧越郡守)를 역임한 김현석(金玄錫)도 아버지인 김문기를 따라 순절하였고, 김문기의 손자 김충주(金忠柱)와 증손 김현남(金玄南), 5세손 김약전(金約前) 등이 모두 충효로 가문을 빛내어 "5세충효(五世忠孝)"의 정문이 세워졌다.
한편 김준(金遵)은 천문, 지리와 실학에 능통 한 인물로 단종이 죽임을 당하자 3년간 복상을 한 후 벼슬을 버리고 전남 고흥으로 내려가 학문에만 전념했다.
그밖의 인물로는 판서(判書) 김복룡(金福龍)의 아들 김응수(金應壽)가 형제들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올랐으며, 담양부사(潭陽府使) 김언공(金彦恭)은 권율(權慄)의 영천 전투와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노량대첩(露粱大捷)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여 명성을 떨쳤다.
노모를 등에 업고 팔공산 전투에서 공을 세운 김유부(金有富)와 그의 아들 김기남(金起南), 김난생(金蘭生) 형제는 병자호란에 순절하여 김준걸(金俊傑 : 선조 때의
공신), 김득성(金得誠), 김영길(金永吉 : 선전관으로 임진왜란 때 순절) 부자와 함께 이름을 날렸으며, 김진행(金鎭行)은 효행으로 정표(旌表)를 받아 충과 효의 전통을 이어왔다.
- 김영삼(金泳三) :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재임 1993~1998)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