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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대구김씨(大邱金氏)

유래

시조 : 김달(金達)

시조 김달(金達)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인 김방경의 넷째 아들김론(金惀)의 증손자이다. 김달은 병조참의를 지내고 경북 대구 도화촌에 살았었으나 조사의(趙思義)의 난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다고 태종3년에 함경도 길주로 유배되었다. 그 후 그후 장남김려연(金麗淵)의 가족이 대구에서 길주로 이주하여 살면서 고향인 대구를 본관으로 하였다.

그후 시조 김달의 작은 아들 (金富亨)의 손자들이 80년 뒤 연산군 때 대구에서 북으로 이주하여 함경도 명천과 평안도 용천, 의주 등에 살면서, 평안도에 살던 계통은 김호견(金浩堅)을 중시조(1세)로 평안도계(용만파)로하였고, 김대성(호연의 8대손)을 중시조(1세)로 하는 등 3계파가 있다.

- 함경도계(길주파) 1대 김달시조

- 함경도계(서포파) 3대 김호연 중시조, 김대성 11대 중시조

- 평안도계(용만파) 3대 김호견 중시조

인물

김득일(金得鎰) : 조선 시대에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김영홍(金永弘) : 조선 시대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취규(金就奎) : 조선 시대에 병조참판(兵曹參判)를 지냈다.

김응회(金應晦) : 조선 시대에 현감(縣監)에 올랐다.

김연석(金連碩) : 조선 시대에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냈다.

김수택(金壽澤) : 조선 시대에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김화룡(金化龍) : 조선 시대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진흥(金振興) : 조선 시대에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김의묵(金宜黙) : 조선 시대에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항렬자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

19世
학(鶴)○
19世
정(貞)○
19世
○기(基)
19世
만(萬)○
19世
응(應)○
20世
○선(善)
20世
○식(湜)
20世
병(炳)○
20世
○회(會)
21世
상(尙)○
21世
형(亨)○
21世
○윤(潤)
21世
병(炳)○
21世
○남(男)
22世
형(亨)○
22世
재(在)○
22世
○곤(坤)
22世
형(炯)○
23世
경(慶)○
23世
성(聖)○
23世
도(道)○
24世
○식(植)
24世
원(源)○
24世
종(宗)○
25世
영(榮)○
25世
○일(逸)
26世
○규(圭)
27世
석(錫)○
28世
○우(雨)
29世
주(柱)○
30世
○환(煥)
31世
선(善)○
32世
○호(鎬)
33世
태(泰)○
34世
○모(模)
35世
병(炳)○
36世
○곤(坤)
37世
진(鎭)○
38世
○택(澤)
39世
상(相)○
40世
○렬(烈)
41世
철(喆)○
42世
○용(鎔)
43世
하(河)○
44世
○권(權)
45世
현(炫)○

· 대동 항렬표(각 종중 권장 항렬표)

인구수

1985년 조사
2,355명
548가구
2000년 조사
2,986명
1,030가구
2015년 조사
2,39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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