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김씨는 시조를 다르게 하는 두계통이 있으며 서로 본관과 성은 같으나 서로 다른 혈통이다.
[ 신라 김알지계 ]
김알지(金閼智)의 28세손인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로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김추(金錘)를 시조로 하는데 그가 고려 때에 진성(晉城君, 진주)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
[ 가락국 김수로왕계 ]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3세손인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둘째 아들 김원술(金元述)을 시조로 하고 있다. 김원술이 672년(신라 문무왕 12) 당(唐)이 말갈군(靺鞨軍)과 연합하여 신라를 침공했을 때 출전하여 격전 끝에 담릉(淡陵)의 만류로 후퇴하였는데, 왕명을 욕되게 하고 가훈을 더럽힌 죄로 부모에게 용서받지 못하여 태백산에 숨어 살았다. 갔다가, 675년(신라 문무왕 15)에 매소성(買蘇城, 양주) 싸움에서 설인귀(薛仁貴)가 이끄는 당군과 거란, 말갈의 연합군을 크게 섬멸하는 등 많은 공을 세우고 상을 받았으나 어머니의 용서 받지 못한것을 한탄하며 벼슬을 하지 않고 (晋州)에서 일생을 마쳤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